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아르네뮤이덴 해전

덤프버전 :


백년전쟁의 전투
[ 펼치기 · 접기 ]
제1기
카잔트 전투아르네뮤이덴 해전영국 해협 전역캉브레 공방전슬로이스 해전
생오메르 전투투르네 공방전베흐쥬학 전투오베르슈 전투에기용 공방전
1차 캉 공방전블랑슈타크 전투크레시 전투네빌스 크로스 전투랭커스터 공작의 슈보시
1차 칼레 공방전루나롱지 전투칼레 전투윈첼시 해전생장당젤리 공방전
아흐드흐 전투긴느 공방전흑태자의 슈보시브헤뙤이 공방전푸아티에 전투
자크리의 난샤르트르 공방전
브르타뉴 내전
샹토소 전투엔봉 공방전반 공방전브레스트 해전모를레 전투
생폴드레옹 전투라 로슈데리앙 전투30인의 결투모롱 전투렌 공방전
오레 전투
제2기
꼬슈헬 전투나헤라 전투리모주 공방전퐁발랭 전투라 로셸 해전
시세 전투곤트의 존의 슈보시와트 타일러의 난루즈베케 전투이프르 공방전
브레스트 공방전마게이트 해전오터번 전투
제3기
아르플뢰르 공방전아쟁쿠르 전투발몽 전투2차 캉 공방전루앙 공방전
보줴 전투모 공방전크하벙 전투라 브로시니에르 전투베르뇌유 전투
성 제임스 요새 공방전몽따흐쥐 공방전오를레앙 공방전후브헤 전투루아르 원정
파테 전투랭스 행진1차 파리 공방전생피에르르무티에 공방전콩피에뉴 공방전
제르베로이 전투생드니 공방전2차 파리 공방전2차 칼레 공방전따흑따 공방전
퐁투아즈 공방전디에프 공방전포미니 전투블렁끄포흐 전투카스티용 전투


1. 개요
2. 상세



1. 개요[편집]


1338년 9월 23일, 프랑스 함대가 양모를 팔기 위해 영국 해협을 지나가던 잉글랜드 상선 5척을 공격하면서 벌어진 해전. 백년전쟁 최초의 해전이자 대포가 처음으로 사용된 해전이다.


2. 상세[편집]


1338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와 프랑스 국왕 필리프 6세간의 갈등이 고조되었다. 양측은 상대국을 침공하기 위해 원정 준비에 착수했고, 자연히 양국 사이에 있는 영국 해협은 갈수록 위험해졌다. 그러던 1338년 9월 23일, 잉글랜드와 동맹을 맺은 나라들에 양모를 팔기 위해 항해하던 영국 상선 5척이 플란데런의 아르네뮤이덴 항구 앞바다에서 위그 키에레와 니콜라 바후셰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갤리선 48척의 습격을 받았다.

프랑스 해군은 숫적으로 압도적으로 우월하니 손쉽게 이길 수 있으리라 여기고 적 상선에 바짝 접근했다. 이때 영국 선박 중 하나인 크리스토프 호에 설치된 대포 3문이 프랑스 갤리선들을 향해 포격했다. 프랑스 병사들은 방심하고 있다가 갑작스러운 포격에 경악해 제대로 대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이로 인해 상당한 손실을 입었다. 그러다가 전열을 가다듬고 공세를 재개했지만, 잉글랜드 선원들은 존 킹스턴 제독의 지휘하에 결사적으로 항전했다.

이리하여 쉽게 끝날 듯했던 해전은 하루종일 이어졌고, 프랑스 병사 900명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포탄이 다 떨어지면서 항전이 불가능해졌고, 결국 존 킹스턴은 신변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조건으로 항복했다. 그러나 뜻밖에 큰 손실을 입은 것에 분노한 니콜라 바후셰는 약속을 무시하고 존 킹스턴을 비롯한 잉글랜드 선원 전원을 몰살하고 상선 5척과 대포 및 화물을 포획했다. 잉글랜드인들은 이 소식을 듣고 프랑스인들에게 강한 적의를 품었다. 1340년 6월 24일 슬로이스 해전에서 패배하고 사로잡힌 니콜라 바후셰는 아르네뮤이덴에서의 만행에 원한을 품고 있던 잉글랜드군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졌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0-16 01:54:30에 나무위키 아르네뮤이덴 해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